“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테리이고 오늘은 선물이다(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지 않은 내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알 수 없는 내일을 이미 벌어진 어제의 역사로 만드셨습니다. 앞으로 열리는 완전히 다른 새 세상, 새 문화의 틀을 미리 짜두셨다는 말입니다. 인류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지난 한 세기를 돌아 볼 때, 동서 역사에서 가장 감추어진 인물, 가장 연구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분의 삶과 위대한 새 진리 말씀이 역사 속에 깊이 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그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약 140년 전 이 동방 한반도 땅에 태어나신 강증산 상제님입니다.
강증산 상제님은 어린 시절부터 만유 생명을 사랑하시어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도 위기에 처한 것을 보면 힘써 살리시고 초목을 즐겨 가꾸셨습니다. 일곱 살 때 이미 천지에 대한 깨달음의 시를 쓰셨으며, 조화권을 보여주심으로써 신동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강증산 상제님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사람이 차경석(1880~1936) 성도입니다. 그는 정읍에서 기두한 동학장군 차치구의 아들로서 동학이 패망한 후 당시에 신인으로 널리 알려진 상제님 뵙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차경석은, 이미 그의 마음을 빼어 보시고 김제 용암리 주막에서 기다리시던 상제님을 극적으로 만나 뵙게 됩니다. 차경석은 그날 이후 놀라운 혈성으로 도문에 입도하였습니다. 그는 상제님 어천 이후 보천교를 조직하여 1920년대 초까지 최단시간에 700만 신도를 거느린, 동서종교 역사상 최대의 부흥가였습니다. 후일 그는 조선 총독부의 촉탁인 일본인 민속학자 무라야마지준村山智順이 찾아와 대화할 때, “강증산은 옥황상제님이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당시 상제님의 명성이 조선 사회에 크게 소용돌이치자, 침략자 이등박문까지도 상제님 만나기를 청했습니다. 상제님은 그의 속마음을 이미 꿰뚫어보시고 김형렬 성도와 통감부를 찾으셨습니다. 이 때 상제님의 성령을 받은 김형렬이 이등박문에게 “네가 조선의 대왕이 되고자 하느냐”라고 꾸짖자 그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고꾸라져버렸습니다.(5:365)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분인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조선에 이인異人이 출현했다’고 하면서 상제님의 권능에 대한 이야기 한 토막을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상제님이 군산에서 공사를 보시던 신이한 행적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후로 남조선에 진인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바로 남조선 사상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이렇듯 상제님의 도권과 신권은 조선 팔도에서 무수히 회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강증산 상제님은 민중들 사이에서 한 인간이나 신인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의 새 역사를 설계하는 하나님으로 숭배되고 있었습니다.
상제님은 1871년 전라도 고부군 객망리客望里, 즉 ‘하늘의 주主를 기다리는 마을’에서 탄강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분을 모르지만 누구나 그분의 가르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상 언어로 숱하게 쓰고 있는 ‘상생’이 바로 그 분이 전한 도의 주제입니다.
상생은 모든 것이 위태롭고 불안한 이 시대의 진정한 화두입니다. 요즘 정치판, 경제계, 승려나 신부 같은 종교인, 예술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 상생을 이야기합니다. 20년 전에 이미 ������상생의 신학神學������(박종천, 1991)이라는 책을 쓴 신학자도 있고, 포항 앞바다 한가운데 불쑥 솟은 조형물을 ‘상생의 손’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상생이 강증산 상제님의 위대한 가르침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상생을 제대로 알고 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함께 잘 살자, 그만 싸우고 사이좋게 잘 지내자’ 하는 공생共生의 의미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생은 그것이 아닙니다.
상제님은 일찍이 “나의 도는 상생의 대도이니라” (2:18:1)라고 선언하시고 일상생활 속에서 상생의 실천원리는 ‘남을 잘되게 하는 공부’, ‘살릴 생 자 공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보다 본질적이고 거시적인 상생의 뜻은 상제님께서 이제까지의 상극 우주를 문 닫고 새롭게 열어주신 우주의 질서,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장차 열리는 ‘꿈의 문명’ 질서 또한 상생입니다. 그 세상에는 인간의 마음 질서도 상생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우주의 관계도 상생으로 돌아갑니다.
[천지성공 1장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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