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에서 서양세력을 물리치는 공사 - 1905년
이제 만일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 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일러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려 하노라. (道典 5:50:4∼6) |
러일전쟁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러일전쟁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발발한 전쟁이지만
러시아와 일본 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록 만드시 분이 있다.
누굴까?
그분이 상제님이다.
상제님은 러일전쟁이 발발하도록 천지공사 프로그램으로 인류역사를 정해놓으신 것이다.
천지공사라는 생소한 말이 나오는데 천지공사 그게 뭐지?
혹자는 예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천지공사와 예언은 다르다
예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제3자의 입장에서 구경꾼이 되어 단순 서술을 한 것이다
예언자는 사건을 변화시킬 수 없다. 구경꾼 또는 나레이터 입장이다.
천지공사는 하나님이 인류역사를 정해놓으신 시간표이다.
1901년 이후에 인류역사는 시간표대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도 모르는 사실.......
* 1:3 천지공사.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조화옹 하느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천지 이법과 천지기운을 바탕으로 병든 천지 질서를 바로잡아 심판해 놓으신 인류 역사의 설계도요 이정표이다.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신축년 이후의 인간 역사는 상제님께서 판 짜 놓으신 내용과 이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표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지공사를 단순한 예언이나 새로운 사상을 설파한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상제님 진리의 진면목을 단 일 퍼센트도 체험할 수 없다. (도전 측주 5:1:3)
그렇하면 상제님은 왜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도록 만드신 것일까?
당시 서양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동양은 서양의 먹이가 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서세동점
평화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려면 동양과 서양의 균형을 맞추어 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했다.
상제님은 우선 러일전쟁에서 동양인 일본이 서양인 러시아를 물리치도록 프로그램을 확정하셨다.
물론 그 다음 프로그램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해져 있다.
여기서는 러일전쟁에 초점을 맞춰서....
러일전쟁1)은 근대 이후 서양과 동양이 맞붙은 최초의 큰 전쟁이었다. 동시에 서양세력이 처음으로 동양세력에 의해 대패배를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참모인 아끼야마 중장은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러시아 함대의 항로를 두 차례 꿈으로 미리 보았으며, 해전 당일 동남풍2)이 강하게 불어 승리를 도왔다고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
1) 러일전쟁 1904년 2월 8일에 일본함대가 뤼순군항을 기습공격함으로써 시작되어, 1905년 9월 5일에 강화를 하게 된 러시아와 일본간의 전쟁이다. 한국과 만주의 분할을 둘러싸고 싸운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동맹과 러불동맹이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되었다. (출처: 두산세계대백과)
2) 49일 동남풍 공사 당시 해전의 주역이었던 일본군 아끼야마 중장은 해전 당일 상제님 공사대로 동남풍이 불어서 전략을 유리하게 전개하였다 한다. 상제님 공사 내용을 모르는 일본인들은 이 바람을 자기들의 민족신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가미가제(神風)라 부른다. (출처: 道典 측주 5:53:4)
3) 쓰시마 해전 1905년 5월 27일∼28일에 발생한 이 해전은 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마지막 결전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날의 승리로 세계적으로 그 지위를 격상시켰다.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꿈이 좌절된 러시아는 팽창의 방향을 서쪽으로, 즉 터키와 발칸반도 쪽으로 돌리게 되었다.
◆ 러일 전쟁
1904~05년,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과 중국 동북부(만주 지역)의 지배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으로,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일본 측 사망자는 약 8만 4천명으로、청일 전쟁 시(약 1만3천명)의 6•5배나 된다. 러시아 측은 약 5만 명이다.
청일 전쟁 후, 러시아는 조선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한편, 극동의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1898년 청으로부터 뤼순(旅順), 다롄(大連)을 조차하여 철도 부설을 진행하였다. 모스크바 대학의 아이라페트프 조교수에 의하면, 러시아 대외 정책의 기본은 대양 진출이라는 해양 전략으로, 황제 니코라이 2세는 이 전략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고 한다.
1900년, 러시아는 의화단과의 일전을 위해 청나라로 출병하여, 진압 후에도 만주에 눌러 앉았다. 일본은 러시아와 교섭을 하면서 전쟁을 준비하였다. 교섭은 결렬되었고, 1904년 2월, 일본군은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 개시하였고, 현재 한국의 인천에도 상륙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12월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도, 뤼순항(旅順港)이 내려다보이는 203 고지를 점령하였고, 다음 해 1월에는 뤼순(旅順)의 요새를 함락하였다. 일본의 연합 함대가 5월, 일본해(한국에서는 동해라고 부르고 있으나, 일본에서 일본해로 표기하므로 일본어 표기로 함)해전에서 발틱 함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히자, 미국의 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강화를 알선하였다. 러시아 국내에서는 혁명 운동이 확산되어 혼란에 빠져있었고, 일본도 전쟁 비용 조달이 한계에 달하고 있던 때이어서 강화에 응했다.
다음 이야기는 아끼야마 중장이 아사노(일본 근대 심령연구의 창시자) 씨에게 들려 준 러일해전의 비화(秘話)이다.
(............)1905년 5월도 20일이 지난 뒤, 아끼야마 참모의 심신의 긴장은 극도에 달했다. 며칠 동안 계속해 옷을 입은 채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을 잤고, 사실 침식을 잊은 채 작전 계획에 골몰하고 있었다.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5월 24일 한밤중이었습니다. 너무나 피곤해서 저는 사관실로 가서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버리고 방안에는 저혼자 였습니다. 두 눈을 감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저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에 이상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쓰시마 해협의 전경이 눈앞에 보이고 발틱 함대가 두 줄로 줄지어 천천히 오고 있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이젠 됐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 저는 번득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몽을 꾼 것은 이것으로 두 번째였으므로 저는 곧 이것은 틀림없이 신(神)의 계시라고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되었구나, 발틱 함대는 두 줄로 늘어선 채 반드시 쓰시마 해협으로 들어온다, 여기에 대항하려면 어떻게 하면 된다는 계획이 곧 머리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드디어 27일 새벽이 되자, 무전으로 적의 함대가 접근해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그 유명한 대해전3)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적의 함대의 배열은 사흘 전에 꿈에서 본 것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었습니다. 첫눈에 적의 함대를 본 순간, 저는 기쁘다고 할까 신기하다고 할까 고맙다고 할까 정말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기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로서는 일러전쟁 중에 두 번이나 거듭해서 이런 이상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막상 전쟁 보고서를 쓰려고 붓을 들었을 때는 자연이 ‘천우신조(天佑神助)에 의하여…’ 하고 서두를 쓰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며 절대로 과장해서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처: 『심령과학』(서음출판사, 1994)재인용
제 0차 세계대전 : 러일전쟁 최근에 역사학자들이 러일 전쟁을 “제 0차 세계대전”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 전쟁 종결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2005년,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회의가 열렸고, 이 전쟁을 “제 0차 세계대전”으로서 재평가하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회의 관계자인 요코테 신지(横手慎二) 게이오 대학 교수에 따르면, 제 1차 세계대전(1914~18)의 중요한 특징들을 러일 전쟁이 많은 점들에서 먼저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나는, 러일 전쟁이 당시 국제 환경의 영향을 받아 구미 열강을 끌어들여 전개되었다는 점이다=그림 참조. 일본은 영국과, 러시아는 프랑스와 각각 동맹을 맺고 있었다. 예를 들면, 영국은 아프가니스탄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어서, 일본과 동맹을 맺는 것이 유리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중국 동북부 점령을 반대하고 있던 관계로, 일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였다. 또 하나의 특징은 ‘총력전’이다. 무기가 발달하고 전쟁 규모가 확대되어, 모든 국력을 전쟁 수행에 쏟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총력전’이라는 사고는 제 1차 대전 중에 확산되었지만, 러일 전쟁에서 이미 그러한 경향이 현저했다는 것이다. 또한, 모스크바 대학의 올레그 아이라페트프 조교수는 “러일 전쟁은 육지와 바다의 총력전이었다.”라고 한다. 육군과 해군의 효과적인 연계 작전을 펼치지 못하면 전쟁을 이길 수 없게 되었다. 전쟁이 국제화됨에 따라, 외국 여론을 아군에 유리하게 하는 ‘선전전’도 중요해 졌다. 일본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귀족원 의원인 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郎)를 미국에 파견해, 일본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고자, 강연과 기자 회견을 통해 러일 전쟁의 정당성을 선전하였다. 러시아도 일본이 선전포고 전에 러시아 군함을 공격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 등을 구미 여론에 호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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