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선령신

나의 뿌리를 찾아서.

천부경81자 2022. 4. 18. 11:39

김씨의 시조 김일제로부터 67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로부터 63

나주김씨의 시조 김운발로부터 34

입도조 김인충으로부터 21

 

김씨의 시조 김일제(金日磾, 기원전 134~ 기원전 86년 음력 8)는 전한 중기의 관료로, 자는 옹숙(翁叔)이다. 본래 흉노 출신으로 흉노의 번왕인 휴저왕(休屠王)[1]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열네 살 때 부왕이 무제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전한에 포로로 끌려왔다. 이후 무제의 신임을 받아 전한의 관료로 일하면서 김씨(金氏) 성을 받았으며, 곽광·상관걸과 함께 소제의 후견인이 되었으나 병들어 투후(秺侯)에 봉해지고 곧 죽었다.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65년 탈해왕이 금성 서쪽 시림의 수풀 속에서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금함 속의 사내아이를 발견하는데, 금함에서 나왔으므로 아이의 성을 김씨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이라 하였다.

 

나주김씨 김운발(金雲發)은 경순왕의 둘째 아들 김굉의 맏아들이다. 김굉은 신라가 망하자 해인사에 들어가 입적하였고 그의 큰아들 김운발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어 나주군에 봉해졌다. 고려시대의 대제학 김대경(金臺卿), 조선시대 왜구를 격퇴한 공적을 세운 무신 김정준(金廷儁경석(金景錫(金適)이 있으며 도총관 김충수(金忠守) 등을 배출하였다.

 

제주 입도조 김인충은 시조 김운발의 14세손으로 고려 말에 무신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강화진 좌령랑장(左領郎將)을 역임하였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1403(태종 3)에 제주에 입도하여 제주목 애월읍 고내봉 부근인 구엄리에 정착하였다. 제주 입도조 김인충의 아들 계전(季全)은 천호(千戶)를 지냈고, 그 손자 여수(麗水)는 조부의 뒤를 이어 무과에 올라 그 벼슬이 어모장군 충무위부사직(禦侮將軍忠武衛副司直)에 이르렀다. 병조 참판을 지낸 김지손(金智孫)은 김인충의 증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