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삼일신고

천부경 81자, 이진진 풀이, 치국평천지사

천부경81자 2012. 4. 13. 21:54

 

 

천부경 81자, 이진진 풀이, 치국평천지사

 

 

▶ 일시무시一始無始

 

35 한나 일(一): 한과 나와 일 이것은 모두 생각적 정신적으로 풀이를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하게 되는 속성을 가진 단순한 自我的 단어이다. 우서 한과 나는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며 불립문자이다. 우리를 한민족 한겨레라고 한다. 한은 그러므로 나와 너 우리이며 또한 나들이다. 또 일은 하나가 되는 사랑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주와 하나인 나의 상태, 또는 최초의 나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독립심의 상태

(一을 나, 하나되는 사랑으로 풀이함)

50 無: 동양에서 無자는 단순한 없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있기는 분명히 있는데 영원히 알 수 없는 신비한 것을 의미한다. 보통 무아라고 했을 때는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이지 내가 없는 상태는 아니다. 여기서도 無자는 분명히 존재하나 영원히 모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일시무시는 “일의 처음은 영원히 모르는 시이며”라고 풀이할 수 있다.

50 사랑은 한없이 넓고 큰 것이기에 아무도 능히 알 수 없는 시이다. 완전히 하나가 된 상태로 즐겼다

54 나의 시작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시작이 나 아닌 다른 것이라고 떠드는 정신병자의 더러운 말을 조심해라라고 해석하면 현재 우리들에게 좋은 말이 된다.

 

▶ 일석삼극무진본一析三極無盡本

57 한(나)를 깨달아(풀어) 보면 바로 삶(三)과 생 그리고 사랑의 중심이며 핵(極)이고 무궁무진함을 본으로 삼고 있는 한없이 깊고 오묘한 것이다.

 

▶ 천일일지일이인일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

59 천일일에서 하나의 一은 ‘나’를 의미하고 또 하나의 一은 첫 번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첫 번째는 하늘이었다. 지일이는 나는 두 번째 지구였다. 인일삼은 나는 세 번째로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 세가지 성품이 있는 것이다. 나에게 하늘의 성품이 있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는 신과 귀가 살고 있다. 내가 땅이었기 때문에 몸이 있는 것이며 몸속에 여러 장기가 있어 땅과 조화를 하면 이 지구에 있는 다양한 것들처럼 다양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一이 나, 한, 일이 빠진 사상은 처음부터 자아를 상실한 기계적 사상이므로 인간을 기계화시키는 타락한 사상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 물질의 노예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일적십거무궤화一積十鉅無匱化

66 내가 점점 많아지면 또는 내 창조력 또는 조화력이 점점 많아지면 사랑 또한 커지고 깊어져서 세상에 있는 어떤 어둠 또는 업으로도 나를 가리울 수 없게 되고 또한 내 앞에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게 다 드러나게 된다. 그러니 오로지 자신(一)의 사랑(十)을 크게 하고 키우는 일에 조금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匱를 감추다, 가리다, 숨기다, 가두다로 해석함)

 

▶ 삼천이삼지이삼인이三天二三地二三人二

68 무궤화된 세상을 보니 또는 완전히 드러난 우주를 보니 살아있는(三) 하늘(天)에는 수많은 다른 것(二)이 있어서 서로 조화를 하고 있다. 살아있는(三) 땅(地)에는 수많은 다른 것(二)이 있어서 서로 조화를 하고 있다. 살아있는(三) 모든 사람(人)들은 다 다르다(二). 그러나 하나로 연결된 다른 것이다.

나와 다른 것을 당연히 보며 나와 다른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보다 유연하고 민감한 자아적 감각으로 재미있게 살아 보아라는 의미로 들으면 될 것이다. 만약에 그러하지 않으면 이 당연한 모든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싸우게 되는 것이다.

 

▶ 삼대삼합육생三大三合六生

71 나는 삶(三)은 크고(大)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삶(三)을 깨달아서(合) 六을 가지고 태어났기(生)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 六을 자유로 해석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六이라는 숫자가 갖는 우리 민족 고유의 개념을 찾아내야 하다.

六(育): 자란다, 움직인다, 점점 좋아진다.

 

▶ 칠팔구운七八九運

 

78 눈(七)을 뜨고 진리를 듣는 귀(八)를 열고 보다 나은 자신을 창조 또는 구(九)해야 비로소 四(죽음)를 깨닫는(十) 四覽이 되는 것이다.

일곱 칠: 눈을 떠서 일구어 보다, 또는 깊이 파 본다. 즉 진리를 깨달아 보는 눈을 뜨다.

여덟 팔: 귀를 열고 듣다. 귀를 열고 자연의 음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아홉 구: 입을 아 벌리고 흡하고 먹고 싶은 상태를 의미하고 구는 구하다는 뜻이다.

 

▶ 삼사성환오칠三四成環五七

82 삶(三)과 죽음(四)을 온전히 깨닫고 이루어(成) 모든 나의 환경(環)을 나무(五)처럼 분명하게 보게(七) 되어 오! 하고 깨닫게 된다.

다섯 오: 오는 깨달음의 환성이며 만남의 감각이다. 죽음을 알고 보고 사랑하고 다시 새로운 삶을 세우게 된다. 처음의 삶이 부모밑에서의 삶이라면 이 새로운 삶은 장가를 가 부모로서의 삶인 것이다. 처음의 삶이 지식적 의타의 삶이라면 이 새롭게 세우는 삶은 오! 라는 깨달음의 함성을 지르는 사람의 삶인 것이다. 마치 새싹이 죽음같은 겨울과 흙을 뚫고 나와서 태양을 향해 무한히 풍요로움을 향하는 삶과 같이 조화로운 삶인 것이다. 죽음을 이긴 부활의 삶이다.

 

▶ 일묘연一妙衍

85 나(一)는 깨달아 보면 어린 여자처럼 묘(妙)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깨닫지 않고 보면 물의 흐름(衍)처럼 넓고 크고 복잡하여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다. 일시무시에 대한 아주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 만왕만래용변부동본萬往萬來用變不動本

91 나는 모든 곳을 가고 모든 곳에 오며 모든 때에 가고 모든 때에 있다. 즉 돌고 돈다. 때로는 모든 것에 사용되기도 하고 모든 것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무수한 변화를 한다.

이러한 수많은 변화를 주관하는 나는 또는 자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최초의 그대로 있다. 그러니 너희도 이 사실을 깨달아 萬往萬來와 用變에 현혹되지 말고 나의 不動하는 本으로써 은은하게 사람을 관조하고 때로는 적극 참여하여 창조자로서 살기를 바란다.

 

▶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94 본심은 자아의 初志를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본심을 찾아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아의 초지를 찾아야 한다. 본심이 과연 무엇을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이 마음을 천부경 저자는 본태양이라고 말했다. 그 태양은 우리나라 말로 해이다. 해는 애의 본이다. 나의 마음은 사랑의 근본인 해와 같은 것이다.

 

▶ 앙명인중昻明人中

100 昻明人中이란 진리로써 어둠 또는 막힘을 밝히는 사람은 그 어디를 가나 그가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밝음은 항상 어둠의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다. 동양사상을 연구하려면 이 중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한다.

자주적인 사람이란 모든 것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기준이 되고 또한 자기가 항상 중심으로서 인지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중앙도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자기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고이며 분명하게 자기를 깨달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모든 것을 남에게 비추어 생각한다. 생명이 중심이고 생명이 가장 거룩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물질이 중심이라고 믿게 되고 환경의 노예로서 전락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밝음이란 자기를 끝없이 닦아냄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천지일天地一

107 내(一)가 곧 천지의 시작(一)이면 너 역시 천지의 시작(一)이다, 또한 내(一)가 바로 우주인 것 같이 너 역시 우주이다. 천부경은 시종일관하여 나(一)의 위대성을 一의 우한성과 一의 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 일종무종一終無終

110 나의 끝은 아무도 모르는 끝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언제 시작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또한 우리의 종착역과 우리의 끝 역시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이다. 단지 생명의 빛의 밝음에 비례하여 그 시야가 넓어져서 과거나 미래를 현재라는 관점에서 밝혀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일종무종의 뜻을 몰라서 주의 주리를 잃고 昻明人이 되지 않아서 中에서 밀리어 외곽으로 떨어져서 환경의 노예로서 조직의 부속으로서 신의 종으로서 살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어둠 속에서 헤메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一始無始의 일은 현재이고 始無始는 아득한 과거이며 一終無終의 일은 현재이고 終無終은 아득한 미래인 것이다.

 

▶ 일一

一에서 시작하여 一로 끝나고 있는 천부경의 마지막 一은 하나의 간절한 의문이며 한이다. 이제 너를 알겠느냐? 이제 너는 너를 무엇이라 하겠느냐? 너도 나처럼 또는 나보다 더 많은 빛으로 너 자신을 다른 너에게 밝힐 수 있겠느냐?

그렇다.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고 너와 나는 한우리로서 한없이 사랑이란 인연줄로 연결되어가는 같은 일이다.

이 마지막에 적은 一자 한자는 우리 모두가 죽을 때까지 죽고 나서도 계속 음미해야 하는 정신적 양식이며 자아적 심심풀이이고 육체적으로 꼭 이러어야 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라는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