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의 핵심

증산도와 환단고기(4) - 증산도 도전에 나오는 치우와 환단고기에 나오는 치우

천부경81자 2012. 2. 14. 22:24

 

 

 

증산도와 환단고기(4) - 증산도 도전에 나오는 치우와 환단고기에 나오는 치우


증산도에서는 환단고기를 인류의 창세역사와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기록한 유일한 사서로서의 가치를 인정한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를 보면,

복희에 대한 기록, 신농에 대한 기록, 뒤에 치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치우는 배달의 18대 환웅 중에서 14번째 환웅이다.

배달의 수도를 신시에서 청구로 옮긴 분으로 자오지 환웅이라고도 한다.


먼저 치우가 군사를 일으키게 된 배경을 보면,

치우는 덕과 지혜로서 백성들을 감싸안고 군사를 기르고 국력을 키우는 중에

신농국의 유망은 정치를 혹독하게 해서 백성들이 원성이 자자하고 백성들이 여기저기 많이 흩어지게 된다.


결국 신농국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이때 치우는 군사를 일으켜 먼저 탁록을 정벌하고 1년 동안 전열을 정비한다.

그 후에 치우는 신농국의 유망이 있는 도읍지인 공상까지 진격해서 유망을 공격한다. 이때 유망은 소호와 한패가 되어 싸우지만 결국 유망과 소호는 공상에서 대패하고 탁록으로 쫓겨 들어간다

다시 치우는 탁록을 공격하여 유망과 소호 일당을 멸망시켰다.

이로써 치우는 백성들을 괴롭히던 유망을 물리치고 새로운 통치를 시작한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 탁록의 토착세력이었던 헌원이 치우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치우는 직접 나서지 않고 먼저 항복했던 소호를 탁록으로 보내 진압하라고 했으나 실패한다.


이번에는 치우가 직접 나섰다. 그러나 당시 치우와 황제의 싸움은 사실 상대가 안되는 전쟁이었다. 치우와 황제는 무기의 성능이 달랐다. 황제는 화살이나 석기를 사용했지만 치우는 이미 청동기를 사용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제 측에서는 치우에 대해 동두철액 즉 구리머리(동두)에 무쇠이마(철액)라고 표현을 했다. 치우는 청동기로 완전무장을 했는데 황제가 아무리 군사를 많이 동원한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결국 황제는 무릎을 꿇게 된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당시 치우의 휘하에 있는 수많은 장수들 중에 ‘치우비’라는 자가 있었다. 치우비는 자신이 급히 공을 세우려 하다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나중에 후세의 일부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서술하면서 황제가 치우를 죽였다고 거짓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일개 장수인 치우비가 죽은 것을 치우천황이 죽은 것으로 기록한 것이다. 치우와 치우비는 별개 인물임에도 치우비가 죽은 것을 치우가 죽은 것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다. 자신들이 뿌리로 섬기는 황제가 동방의 황제 치우에게 무릎꿇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마음속에서 부인하고 싶은 것이 게다. 그러나 역사는 사실대로 바로잡아야 한다. 환단고기는 이런 역사의 잘못을 바로잡아주고 있다.



증산도 도전을 보면 치우와 황제가 탁록에서 벌인 전쟁에 대해 말씀하신 성구가 있다. 황제가 난리를 일으키므로 치우천황이 그를 진압을 하였다는 내용이다.


 1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2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3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4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5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6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7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증산도 도전 道典 2:3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