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의 핵심

증산도와 환단고기 - 헝가리.터키.핀란드의 기원은 고구려

천부경81자 2011. 11. 15. 22:18

 

 

 

헝가리.터키.핀란드의 기원은 고구려


★ 헝가리(Hungary)와 훈족(Hun族) 및 고구려(高句麗)


미국의 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Discovery)에서 방영한 내용인데, 외국 특히 독일(獨逸)에서는 훈족(Hun族)이 한국의 고구려(高句麗)에서 뻗어나온 세력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훈족(Hun族)을 이민족(異民族) 취급을 하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는 친일파(親日派)들이 주류(主流)로 대접받았고, 식민지(植民地) 사관(史觀)에 의해 우리의 역사는 힘없고 약해빠진 쓰레기 역사라고 교육시키는 현실이니, 우리 나라의 역사에 자긍심을 키우기 보다는 패배주의(敗北主義)에 빠지게 하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夫餘 BC 239-58), 고구려(高句麗. BC 37-AD 668), 흉노족(匈奴族), 훈족(Hun族)은 거의 같은 계열이다. 서양인들이 말하는 훈족(Hun族)고구려(高句麗) 민족을 말한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檀君) 제왕은 후국(侯國)에 왕족을 보내거나 부족장을 제후(諸侯)로 임명해 통치했다. 이 때문에 후국(侯國) 호칭에는 단(檀)씨가 많았다. 예컨대, 흉노(匈奴)의 왕 호칭은 단후(檀后), 선비족의 왕은 단석괴(檀石槐), 유연은 대단(大檀) 등이었다.


흉노족(匈奴族)의 기원은 북방 초원에서 배달(倍達. BC 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제후국(諸侯國)들이 몽골 고원중앙 아시아 일대를 떠돌며 형성되었다. 흉노(匈奴)라는 글자 뜻은 흉악한(匈) 오랑캐 노예(奴)라는 것인데, 중국인들은 훈족(Hun族)에 대한 열등감과 악(惡)감정을 곁들여 그들의 이름을 오랑캐 보다 더 폄하하여 흉노(匈奴)라고 하였다.


BC 318년 무렵 흉노족(匈奴族)은 중국 전국시대의 진(晉). 한(韓).위(魏).조(趙) 나라를 공격했으며, 이에 중국내의 여러 나라들은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각 성벽(城壁)을 쌓았는데, 이것이 뒷날에 진시황(秦始皇)의 만리장성(萬里長城)으로 완결되었다. 흉노족(匈奴族)은 먼저 BC 54년 동서로 갈린다. 그 후, 서기 48년에 남북으로 갈리고 남흉노는 후한에 항복하고, 북흉노는 2세기 중엽에 중앙 아시아 초원 지대로 이동하였다.


환단고기(桓檀古記) 기록에 따르면, 흉노족(匈奴族)은 고조선(古朝鮮, B.C2,333-238)의 진한(辰韓). 번한(番韓). 마한(馬韓) 중 번한(番韓)에 속한 북방 동이족(東夷族) 계통이며, 고조선(古朝鮮),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의 제후국(諸侯國)이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투르크족을 지배한 투르크족의 지배 계급이었다.


흉노족(匈奴族)은 나중에 고구려(高句麗) 민족과 연합하여 훈족(Hun族)을 형성하였고, 훈족(Hun族)은 남으로 이동하여 돌궐족(突蹶族)과 서로 연합하면서 투르크족(Turk族)을 형성하였다. 그래서, 흉노족(선비족)이었던 신라(新羅) 김씨 왕족들이 중앙 아시아 투르크족과 활발한 교역을 하고 중앙 아시아인들(투르크인들)이 경주(慶州)에 많이 거주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고구려(高句麗) 민족은 서기 4세기 초 무렵, 극동 아시아에서는 수년동안 기온이 평시보다 떨어지는 이상(異常) 기온 현상이 발생하였는데, 그들은 이상 기온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중앙 아시아의 흉노족(匈奴族)의 잔류 세력을 규합하였고 훈족(Hun族)을 형성하였다. 훈족(Hun族)은 결국 4세기 중엽에  알타이 산맥(Altai Mountains)을 넘어 유럽으로 이동하였으며, 훈족(Hun族)의 일부는 우랄 산맥(Ural Mountains)을 건너 에스토니아(Estonia)를 경유하여 바다를 통해 핀란드(Finland)로 건너가 8세기 무렵에 이 지역에 정착하였다. 


고구려(高句麗) 민족이 서양 역사 무대에 훈족(Hun族)의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다. 훈족(Hun族)은 남으로 이동하여 돌궐족(突蹶族)과 서로 연합하면서 투르크족(Turk族)을 형성하였고, 552년 지금의 알타이(Altay) 산기슭에 투르크(Turk) 제국을 건설하였고 나중에 서방(西方)으로 이동하여 터키(Turkey)가 되었다. 알타이(Altay) 어족(語族)은 지금의 알타이(Altay) 산기슭에 고구려(高句麗) 민족이 세운 바로 훈족(Hun族)의 투르크(Turk) 제국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민족의 뿌리인 배달(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夫餘 BC 239-58), 고구려(高句麗. BC 37-AD 668)의 언어와 문자 체계가 널리 중앙 아시아 일대로 퍼져 나간 것이다.


서양인들의 훈족(Hun族)에 대한 두려움은 엄청났다. 고구려(高句麗) 민족의 기마 전투와 로마(Roma)의 서양식 전투는 전혀 차원이 달라서 그들은 번번히 저항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징기스칸(Genghis Khan) 이전에 유럽 지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소수 영웅 집단이 바로 고구려(高句麗. BC 37-AD 668) 민족에서 기원한 훈족(Hun族)이었다. 훈족(Hun族)은 4세기 중엽에 알타이 산맥(Altai Mountains)을 넘어 유럽으로 이동하여 서기 375년 다뉴브 강(도나우강) 일대의 헝가리(Hungary) 지역과 흑해(Black sea) 북부 지역에 그들의 왕국인 훈(Hun) 왕국을 세웠으며 오늘날 헝가리(Hungary)가 되었다. 헝가리(Hungary)라는 국명은 훈(Hun) + 땅(gary)의 합성어이다. 훈족(Hun族)이 375년 흑해 연안에 훈(Hun) 왕국을 세우자 그곳에 살던 게르만(germane) 민족이 훈족의 압박을 피하여 동로마로 이주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게르만(germane) 민족의 대이동이다. 게르만 민족의 이동은 결국 로마(Roma) 붕괴(崩壞)의 발단이 되었다.


★ 터키(Turkey)와 돌궐족(突蹶族) 및 고구려(高句麗)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은 다수의 부족을 후국(侯國) 제도를 통해 통치했다. 제1형(직할) 후국은 부여(夫餘). 옥저(沃沮). 구려(句麗). 예맥(濊貊). 숙신(肅愼) 등이다. 제2형(변방) 후국돌궐(突蹶). 오손(烏孫). 선비(鮮卑). 유연(柔然). 동호(東胡). 오환(烏桓). 해(奚). 산융(山戎). 실위(室韋. 몽골) 등이 포함된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숙신(肅愼)족은 만주 북동 방면에 거주하였는데, 나중에 말갈족(靺鞨族)으로 호칭되었다. 이들 말갈족(靺鞨族)베링 해협(Bering strait)을 건너 아메리카(America)로 건너가 인디언(Indian) 부족을 형성하였다. 중앙 아시아와 아메리카에 피라미드(pyramid) 문명을 건설한 민족은 배달(倍達. BC 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후예들이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오손(烏孫)족은 서방으로 이동하다가 강거(康居)족과 융합하여 카자흐(Kazakh) 민족을 형성하였으며, 오늘날 카자흐스탄(Kazakhstan)이 되었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의 돌궐족(突蹶族)은 후국(侯國)의 형태로 있었지만, 고조선(古朝鮮)이 멸망한 후에는 부여(夫餘 BC 239-58) 및 고구려(BC 37-AD 668)와 혈맹 관계에 있었다. 고구려(BC 37-AD 668)는 돌궐(突蹶)과 동맹 관계를 통하여 중국의 수(隋)(581-618), 당(唐)(618907)을 방어해 낼 수 있었다.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夫餘 BC 239-58). 고구려(BC 37-AD 668) 계열의 부족들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쪽으로 이동하여 고구려(高句麗) 민족훈족(Hun族)과 함께 돌궐족(突蹶族)이 연합하여 투르크족(Turk族)을 형성한 후, 552년 알타이 산(Altai Mountain) 기슭에 투르크(Turk) 제국을 세웠다. 투르크(Turk) 제국나중에 서방(西方)으로 이동하여 1299년 오스만 투르크(Osman Turk. 1299-1922) 제국이 되었고, 결국 오늘날 터키(Turkey)가 되었다.


한국과 언어 구조가 동일한 어족을 알타이어족(Altay language)이라 하는데, 알타이 산(Altai Mountain) 기슭에 세워진 투르크(Turk) 제국이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돌궐족(突蹶族)고구려(高句麗) 민족훈족(Hun族)이 중앙 아시아를 이동하면서 많은 지역에 문화를 남겼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돌궐(突蹶)은 서기 580년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뉘고, 동돌궐은 당(唐)의 회유 정책에 굴복하다가 멸망하였다. 그 후 돌궐족은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면서 우즈베크(Uzbekistan). 타지크(Tajikistan). 투르크멘(Turkmenistan). 위구르(Uyghur). 핀족(핀란드) 등 다수의 국가와 민족으로 분화되었다.


터키(Turkey)는 우리 한국(韓國)을 형제국(兄弟國)으로 역사 교과서에 기록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들의 조상인 투르크(Turk) 제국돌궐족(突蹶族)고구려(高句麗) 민족훈족(Hun族)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1950년 6.25 한국 전쟁 당시 한국전 참전 국자 중에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군인을 한국에 파병시킨 나라가 바로 터키(Turkey)이다. 2002년 월드컵(world cup) 축구 경기 때에도 그들은 한국이 축구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우리 한국(韓國)을 응원했었다. 고구려(高句麗)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이 돌궐(突蹶)로 귀속해 들어갔는데, 돌궐(突蹶)은 특히 고구려 유민(遺民) 가운데 여성을 뽑아 종교의 수장(首長)인 제사장(祭司長)에 임명하였다. 이를 탕구르(당굴래=단군)라고 했는데, 고조선 시대 제사장의 수장(首長)을 단군(檀君)이라고 한 것과 같은 개념의 말이다.


한국인이 바이칼호(Baikal lake), 알타이 산맥,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로 왔다는 가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가설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물론 상호 교류는 있었지만, 역사적 진실은 반대로 배달(倍達. BC 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夫餘 BC 239-58), 고구려(高句麗. BC 37-AD 668) 문명이 서방으로 이동한 것이다. 고조선(古朝鮮) 국가 붕괴로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서 고조선(古朝鮮).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 문명 후예들이 서방으로 이동함에 따라 유럽중앙 아시아 대륙의 고대(古代) 역사가 격동하게 된 것이다.


★ 핀란드(Finland)와 훈족(Hun族) 및 고구려(高句麗)


핀족(Finns)은 훈족(Hun族) 계열의 기마 민족이다. 고구려(高句麗) 민족은 서기 4세기 초 무렵 이상(異常) 기온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할 때, 중앙 아시아의 흉노족(匈奴族)의 잔류 세력을 규합해서 훈족(Hun族)을 형성하였다. 훈족(Hun族)의 일부는 4세기 중엽에 알타이 산맥을 넘어 흑해(Black sea) 연안의 유럽으로 이동하여 게르만(germane) 민족의 대이동을 일으킨 후, 오늘날 헝가리(Hungary)가 되었으며, 일부는 우랄 산맥(Ural Mountains)을 건너 에스토니아(Estonia)를 경유하여 바다를 통해 핀란드(Finland)로 건너가 8세기 무렵에 이 지역에 정착했다.


핀란드(Finland)의 핀족(Finns)은 원래는 아시아인들처럼 검은 눈. 검은 머리였다. 하지만, 14세기 중엽부터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등 바이킹족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잇따라 핀란드를 지배하면서 혼혈(混血)이 생기기 시작해 머리 색깔은 짙은 금발로 바뀌고, 겉모습 역시 지금의 북부 유럽인들처럼 변했다. 동양인과 서양인이 결혼해서 3대만 내려가면 유전적으로는 동양인의 형질이 더 많이 남아 있게 되지만, 동양인의 외관과 흔적은 사라진다. 


핀란드(Finland) 사람들은 한국(韓國) 민족과 핀족(Finns)이 같은 계통이고, 핀족 전통 언어와 한국어가 문장 구조도 비슷하며, 핀란드의 핀족, 터키의 돌궐, 헝가리의 훈족, 흉노 위구르. 몽골 등등이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Ural Altay language) 계통으로 같은 뿌리이며 형제국(兄弟國)이라고 역사 시간에 배운다고 한다. 우랄 알타이 어족(語族)은 돌궐족. 흉노족. 터키족. 몽고족. 만주족 등 알타이어 계통과 헝가리어. 핀족(핀란드). 에스토니아어. 위그르족 등의 우랄어 계통으로 나뉘어 진다. 핀란드(Finland)의 핀족(Finns)은 우랄 알타이 어족(語族)에 속하는 인종이다. 언어는 현재 핀란드어(Finland language)를 사용하며, 현재도 핀란드 북쪽에서는 검은 눈검은 머리를 가진 종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근대(近代) 역사에서 500년 이상 지속된 왕조(王朝)는 조선(朝鮮)밖에 없다. 서구에서는 신성(神聖) 로마(Roma) 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帝國)이지 왕조(王朝)가 아니다. 오스만 투르크(Osman Turk) 제국이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는데, 그것도 제국(帝國)이지 왕조(王朝)는 아니다. 에스파냐(España) 왕국이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España) 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Napoleon)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Joseph Bonaparte)가 에스파냐(España)에 가서 왕을 했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이상 가지를 못했다. 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 지속된 것은 조선(朝鮮) 딱 한 나라 밖에는 없었다.


중세(中世) 역사에서 고려(高麗)가 500년 갔다. 고대(古代) 역사에서 부여(夫餘) 1000년, 고구려(高句麗) 700년, 백제(百濟) 700년, 신라(新羅) 1,000년 갔다. 외국에서는 러시아(Russia)에 류리크(Rurik. 862-1598) 왕조가 하나 있었고, 동남 아시아에 크메르(Khmer. 802-1431) 제국이 하나가 있었으며, 이디오피아(Ethiopia)에 악숨 (BC 900년대 중반-1974) 왕조가 하나 있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한국은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이다.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다. 왜 그럴까? 정치적인 합리성.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한 것이다. 중국(中國)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는 400여년 정도밖에 안 된다. 한(漢) 나라 401년(BC202-AD220), 당(唐)나라 289년(618-907), 송(宋)나라 319년960-1279), 원(元)나라 364년(1271-1635), 명(明)나라 276년(1368-1644) 청(淸)나라 276년(1636-1912) 등이다.  (글:최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