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에 대하여

증산도란?- 강증산 상제님의 유년시절을 알려주는 증산도 도전 성구

천부경81자 2011. 7. 30. 12:03

 

 

  유소시절의 상제님
 
 천지를 가슴에 품으신 신동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국량이 있다. 그리고 한 인간의 됨됨이는 어릴 적에 이미 형성된다고 한다.
 
 강증산 상제님은 어려서부터 노는 것이 여느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여섯 살 때인 병자(丙子, 1876)년에 풍물굿을 보고 문득 혜각(慧覺)이 열리셨다 한다.
 
 풍물굿은 오늘날 풍물놀이라고 하는데,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서 꽹과리, 징, 장고, 북, 태평소, 소고, 나발을 연주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농경 생활을 영위해 온 우리 민족은 농사지을 때 일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 신이 나도록 해주거나,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신명과 감응하여 조화되기 위해 목·화·토·금·수 다섯 기운을 품고 있는 풍물을 연주하였다.
 
 본래 한민족의 심성에는 하늘과 땅을 생명의 부모로 받들고, 천지의 질서에 순응하여 하늘땅과 조화된 삶을 살아가려는 의식이 뿌리깊이 박혀 있었다. 풍물굿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하나 되게 하고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씻어내는 크고 하나 된 울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소리다.
 
 상제님은 훗날 장성한 뒤에도 다른 굿은 구경하지 않으면서 풍물굿은 자주 구경하셨다.
 
 같은 해, 상제님의 부친께서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려고 태인 장군리(泰仁將軍里) 황씨 집성촌에서 황준재(黃俊哉)라는 이름 있는 훈장을 들이셨다. 그러나 상제님은 스스로‘하늘 천(天)’ 자와‘땅 지(地)’자를 집안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읽고는 책을 덮고 아무말 없이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공부하자고 권유하는 훈장에게“하늘 천 자에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땅 지자에 땅의 이치를 알았으면 되었지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노시다가 시간이 되면 가시지요.” 하여 결국 부친께서 훈장을 돌려보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은 고인이 된 황공규 성도(황훈장의 후손)가 증산도『도전』을 편찬하기 위해 답사한 사람들에게 증언한 내용이다.
 
 또 상제님이 일곱 살 때 지은 시에도 상제님의 기품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어느 글방에 가서 훈장에게서‘놀랄 경(驚)’자운(韻)을 받고 지으신 것이다.
 
 遠步恐地坼이요 大呼恐天驚이라
 원보공지탁 대호공천경
 
 멀리 뛰려 하니 땅이 꺼질까 두렵고 크게 소리치려 하니 하늘이 놀랄까 두렵구나.(증산도 도전 1:20:2)

 
 이 시를 보면, 하늘과 땅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 주인이신 상제님께서‘꺼질까, 놀랄까’염려하시는 영물(靈物)이다. 어린 상제님의 가슴 속에는 천지에 대한 생각이 꽉 차 있는 것이다.
 


 상제님이 여섯 살 때 풍물굿을 보고 혜각이 열리셨다는 사실과 훈장과의 일화, 그리고 일곱 살 때 쓰셨다는 이 시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하늘과 땅을 품에 안고 천지의 질서를 꿰뚫으신, 감히 가늠하기 어려운 상제님의 지혜와 위엄을 느낀다. 대우주 통치자 하나님으로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시는 위대한 심법과 크신 조화권능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훗날“나는 천지와 함께 동행하노라.”고 하신 말씀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어린 상제님의 조화
 그러면 어린 시절 강증산 상제님이 보여주신 조화권능,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신이한 기적은 어느 정도였을까?
 
 일곱 살 때인 어느 날, 객망리(손바래기) 집 마당에서 동무들과 놀이를 하던 상제님이 갑자기 고사리 손으로 마당 한쪽 구석을 판다. 함께 놀던 아이들이 이유를 물어도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샘을 판다.”고 했다. 처음에는 맨손으로 땅을 긁다가 이내 복찌깨로 파며 연신“어서 물 나라, 물 나라.”한다.
 
 그런데 정말로, 물이 날 만 한 자리도 아니고 그리 깊이 파지도 않았는데 잠시 후에 샘물이 솟아났다. 이를 본 아이들이 모두 신기해하며 손뼉을 쳤다.
 
 훗날 그 샘물은 동네 우물로 쓰였다 하는데, 지금도 그 우물터가 남아 있어 답사 하는 이들의 감회를 새롭게 한다.
 
 일곱 살 무렵, 상제님은 세상을 경험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다. 상제님이 가시는 곳마다 신이 한 재주를 가진 신동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래서 호기심에 상제님의 재주를 시험해 보려는 사람도 많았다.
 
 한번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흥덕 부안면 (興德富安面) 하오산(下鰲山) 앞의 알미장(卵山場)에 가셨다. 그때 어떤 사람이 상제님을 시험하려고, 지필묵을 내놓으면서 상제님께 글을 청하였다. 상제님은 조그만 손으로 붓을 꽉 잡고 먹을 듬뿍 묻히셨다. 그리고는 종이 위에 굵게‘한 일(一)’자 한획을 힘껏 그으시며 큰 소리로“나는 순이다!”하고 외치셨다. 순간 한 일 자가 마치 누에처럼 꿈틀 꿈틀 기어간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더 자세히 보려고 서로 몸을 밀치고 당기고 하는데, 이 때 상제님께서 다시“조선 땅은 한 일 자 누에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의 깊은 의미는 알 수가 없지만, 지금도 살아 있는 김천수씨가 부친인 김일화(박공우 성도를 수십 년 동안 아버지처럼 모신, 박공우 성도의 수제자)에게서 들은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부친도 어려워 한 아들
 또 하루는 상제님의 부친께서 벼를 말리시는데, 여기저기서 새와 닭들이 모여들어 낟알을 쪼아 먹는다. 이를 본 부친이‘훠이~’하며 새와 닭들을 쫓으셨다.
 
 이에 상제님께서는“새 짐승이 한 알씩 쪼아 먹는 것을 그렇게 못 보시니 어찌 사람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하며 부친을 만류하셨다. 그러나 부친은 상제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굳이 쫓아 버리셨다.
 
 그러자 쾌청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이 치고 큰비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벼가 빗물에 휩쓸려가서 한 알도 건지지 못하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이렇듯 생각이 깊고 영명(英明)하심에 부친께서도 아들을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하였다.
 
 어느 날, 상제님은 부친께 예를 갖추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아들이라고 함부로 대하시거나 제 말씀을 가벼이 여기시면 아니 됩니다.”
 
 비록 인간의 몸을 쓰고 계시지만, 상제님은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시다. 천지의 신장들이 항상 상제님을 음호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 상제님을 함부로 대하면 천지신명이 그 불경을 용서치 않는 것이다.
 
 이후 부친께서는 아들의 행동을 일체 간섭하지 않으셨다 한다.
 
 
 수석 성도 김형렬을 처음 만나시던 날
 상제님은 열네 살 되시던 갑신(甲申, 1884)년에 정읍 불출암(佛出庵)에서, 훗날 상제님의 성적(聖蹟)을 세상에 전하는 증언자의 천명을 수행하게 될 김형렬을 처음 만나신다.
 
 김형렬은 금구 환평 사람으로, 부잣집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도에 뜻을 두고 있었다. 형렬은 강가성을 가진 신동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서 동무로 삼고 싶었다. 어느 날 그는 상제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상제님이 사신다는 고부쪽으로 걸어가는데, 도중에 우연히 발길이 이끌려져 불출암으로 들어갔다. 바로 거기에 상제님이 와 계셨던 것이다.
 
 우연찮게 상제님을 만난 형렬은, 범상치 않은 상제님의 기운에 눌려 그 자리에서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나이가 적은 상제님께 재배를 하고 깍듯이 공대하였다. 그때 상제님은 형렬에게“네가 법줄은 아는구나.”하시고“내가 땅위에 서 있다고 아무리 땅을 파 보아라. 나는 공중에 뜬 사람이다. 한번 떠봐라!”하고는 목침을 밟고 서셨다. 형렬은 자못 의심스러워하며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상제님의 발을 받쳐 들었다. 상제님의 몸이 공중에 붕 뜨셨다. 형렬이 크게 놀라워하며 손을 더 위로 올리자 더 높이 뜨시고, 그렇게 손을 들면 드는 대로 위로 떠오르셨다.
 
 불출암은 미륵불이 땅에서 솟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암자다. 그곳에서 상제님이 김형렬을 만나신 것은, 당신이 미륵불로 오셨음을 각인시켜 주신 상징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또한 이 첫 만남에 대해 김형렬은 우연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상제님께서 훗날 천지를 뜯어고치는 공사를 보실 때 식주인(食主人)으로 삼을 형렬을 만나기 위해, 미리 그곳에 가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조화권능을 그에게 보여 주심으로써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과 믿음을 심어주셨다.